Sogang People Interview Series 02.
큐레이터라는 익숙한 신세계
김해주 동문(프랑스문화 99) 인터뷰
큐레이터라는 익숙한 신세계
김해주 동문(프랑스문화 99) 인터뷰당신은 전시를 좋아하는가? 전시는 사람들의 취미생활이자 포토제닉한 사진의 배경으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을 던져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하나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강박을 예술로 승화해낸 작가 쿠사마 야요이가 다시 한번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도 뉴욕에서 열렸던 1989 년의 대규모 회고전 덕분이었듯이 전시는 죽어버린 예술가를 되살리기도 하고 예술과 사람들을 이어주며 세상을 충격에 빠트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큐레이터가 있다. 그는 담론과 질문을 제시하고 무엇보다 전시를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사람이며, 세상으로 예술을 꺼내 크고 작은 축제를 여는 자이다.
이러한 큐레이터에 대한 동경으로 취업지원팀에 큐레이터 선배를 찾아 연락했을 때 구할 수 있던 단 하나의 연락처가 바로 아트선재 부관장으로 있는 김해주 동문의 연락처였다. 당시에는 감히 용기를 내지 못했지만, 그로부터 2년 후 2022년 부산국제비엔날레의 전시감독을 맡게 되신 동문님의 소식을 접했을 때는 서강가젯 기자로서 연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술에 대한 막연한 관심이 있는 자에게도 참고가 될 진로 확립의 과정, 전시를 만드는 방법과 그 과정에서의 고민, 그가 일하는 아트선재센터와 부산국제비엔날레의 방향성 이야기까지.. 큐레이터라는 익숙하고도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

김해주 큐레이터
안녕하세요 동문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99 학번 프랑스문화와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김해주입니다. 지금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으로 일하고 있고, 내년도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1_ 큐레이터-되기
서강대학교 프랑스문화학과를 전공하셨고 신문방송학과를 부전공하셨죠. 전공이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데 계기나 도움이 되었나요?
고등학교 때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예술철학과 예술 전반에 관심은 있었지만 직업으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지는 막연하게 느껴졌습니다. 서강의 학풍이 마음에 들었고 영어 외의 외국어와 그 나라의 문화를 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 외국어문계에 지원했습니다. 신문방송학을 복수로 전공하게 된 것은 연극영화 수업과 더불어 글 쓰는 일과 저널리즘에 관한 관심 덕분이었고요. 이때 배운 것들은 직업 선택의 계기가 되었다기보다는 예술대학이 없는 서강대학교 안에서 예술과 연계된 커리큘럼을 자유롭게 짤 수 있어 도움이 되었던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예술과 연계된 커리큘럼을 짜셨다면 학교 밖의 기회들도 많이 찾으셨을 것 같은데, 어떤 대학 생활을 보내셨을지 궁금하네요.
학교 내에서 수업도 열심히 들었지만 영화도 자주 보러 다녔고 여러 미술 이론 강의를 찾아가기도 했어요. 주로 보이는 기회들을 잡으려 노력하며 예술 인접 영역을 열심히 탐구하고 다녔어요.
진로를 구체화하는 데에는 아트선재센터에서 모집했던 도슨트*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어요. 10 회 가량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양질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전시에 프랑스 작가가 상당히 많이 참여했고 불어를 할 수 있어 작품 제작을 돕게 되면서 작업 현장을 가깝게 지켜보고 일을 맡게 된 것이죠. 그 이후 2004년 에 다시 인턴십 요청을 받게 되어 전시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큐레이팅에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전시를 자주 보러 다녔어요. 당시는 90 년대 국제적인 미술 경향과 한국의 자생적인 씬이 합쳐지면서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여러 대안공간이 출범하기도 하고 흥미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일들을 지켜보면서 미술이 사고를 시각화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제가 아는 미술의 담론을 넓히며 흥미를 가지게 되었어요.
*도슨트 :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를 설명하며 이해를 돕는 사람
서강대학교 졸업 이후 프랑스 파리 8 대학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하셨습니다. 편입하시고 다시 학교에 다니신 거죠. 그 이후 문화연구 전공으로 석사도 받으셨죠. 유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무엇이든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작업을 할 수 있겠다고도 생각해 조형예술 학사 편입을 결정했습니다. 실기와 이론이 섞인 수업들을 두루 들었습니다. 1년은 중간에 큐레토리얼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큐레이터를 양성하는 국제적인 트레이닝 프로그램이었는데 다양한 사람들과 세미나와 토론을 통해 공부했고 직접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배우기도 했어요. 그 후 특별히 큐레이팅과 연관된, 현재의 현상을 바라보는 공부를 하고 싶어 문화연구* 전공을 택했습니다.
한국에 들어와서 여러 전시 프로젝트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업무와 공부를 오가며 석사까지 마쳤고, 큐레이팅 쪽으로 가는 것이 저에게 맞구나라고 확인했습니다. 부산비엔날레에서 코디네이터 일을 하고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일을 하기도 했는데요. 스스로의 기획을 하는 시기는 아니었지만 작가와의 커뮤니케이션, 작품 운송과 설치 등 실무적인 세부에 대한 경험을 감각적으로 해볼 수 있어 확실한 트레이닝의 시기였습니다.
* 문화연구 : 이론적, 정치적, 경험적으로 문화를 분석하는 분야로서 현대 문화와 그것의 역사적 기초들의 정치적 역동성에 집중하며 특징, 충돌, 그리고 우발성을 정의하려 한다.
*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 전시를 직접 기획하기보다는 실행 측면을 주로 맡는 보조 큐레이터.
#2_ 큐레이팅-하기

남화연, 마음의 흐름, 2020 (촬영 : 김익현)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할 때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하므로 동력을 위해서라도 스스로의 관심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퍼포먼스라는 매체의, 시간 안에서 신체를 매개로 계속 장면이 변하는 면을 흥미롭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퍼포먼스와 퍼포먼스가 다른 시각예술 매체들과 결합해 생기는 작용에 집중해 큐레이팅을 지속했습니다.
그러나 기관에서 일하게 되면 기획의 단위가 한 전시가 아니라 더 큰 단위가 됩니다. 하나하나의 프로젝트도 중요하지만, 프로젝트들이 연결되면서 생기는 그림, 그리고 기관이 전하는 메시지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기관이 발산하는 메시지를 수용하는 관객들이 넓어지니 이 시점 사람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더 주목하게 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트선재센터는 패션, 건축, 무용 등의 다양한 매체를 다룰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퍼포먼스에서 신체가 공간을 점유하면서 발산하는 에너지가 강력하다고 생각해 미술관 안으로 퍼포먼스를 가져오려는 노력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트선재센터의 방향성에 대해 좀 더 말씀 듣고 싶어요. 아트선재센터가 실험적인 미술의 형태와 새로운 작가들의 발굴과 성장을 지향한다는 소개 또한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어떠한 방식으로 이러한 방향성을 구현하고 계신가요?
아트선재는 설립 때부터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새로운 작업을 후원했는데요. 이번에 열리는 전시([작아져서 점이 되었다 사라지는]과 [호스트-모디드]) 역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다수 소개합니다. 더불어 아시아 지역의 주요 작가들을 소개하기 위한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합니다.
그렇군요. 아트선재센터에서 기획하셨던 전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를 여쭤봐도 될까요?
아트선재에서 기획했던 전시 중에는 [색맹의 섬](2019)이라는 전시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에콜로지*를 단순히 환경 파괴에 대한 문제로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환경의 비대칭적인 시선을 강조하면서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을 다루려 한 전시였어요. 특히 이 전시는 타인과 타 생명체, 그리고 환경과 내가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갈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이후의 전시들과도 모두 연결되는 주제인데, 그 의제를 처음으로 아트선재센터 안에서 제시했다는 점이 의미있게 느껴져요.
*에콜로지 : 인간과 자연과의 사이에 바람직한 관계를 찾아내고 그 실현을 향해 움직이는 사회운동, 생활 자세, 사상, 학술연구 등을 가리킨다. (환경운동연합 환경용어 중)

<색맹의 섬>(2019) (촬영 : 김연제)
아트선재센터에 방문했을 때 인상 깊었던 점은 전시 텍스트가 특히 간결하고 공간의 활용이 여유 있다는 것이었어요. 이러한 전시 텍스트나 공간의 활용을 어떤 의도로 기획하시나요?
아트선재센터의 공간 자체가 형태가 특이하고 아름답고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에요. 매 전시마다 작품과 만나서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게 큰 즐거움이기도 하죠. 작품 배치를 할 때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요. 다양한 매체들이 한 전시에 활용되므로 필요한 물리적 요건들이 다르고 동선도 고려해야 합니다. 관람객들이 공간의 범위와 환경을 어떻게 느끼게 하고, 어떤 작품을 순서대로 만나게 할 것인지를 고려해 공간을 계획합니다. 전시 텍스트 또한 의도적으로 굉장히 간명하게 적는 경우도 있고, 서너 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길게 적는 경우도 있습니다. 배경을 알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 설명하되 감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관람객들이 시각적인 직관에 더 의존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설명을 뺍니다.

[먼지 흙 돌](2020) (촬영 : 김연제)
그렇군요. 이런 아트선재센터의 전시를 관객이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지도 질문드립니다.
전시 감상에 있어 답은 없습니다. 작품을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 오해 또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어려움을 돌파하길 권합니다. 텍스트를 다룰 때 전체적인 전시의 틀을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하지만 작품 자체를 쉬운 말로 설명하려고 애쓰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설명했을 때 작품의 고유함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이 다루는 것이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지더라도 처음 접하는 활동을 할 때처럼 반복해서 돌파하다 보면 자신만의 관점이 형성될 것입니다. 꼭 미술사나 조형 언어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더라도 전시와 작품이라는 눈앞의 물질을 일상적인 사물과 비교해보며 감상할 수도 있으니까요.

[구동희 : 딜리버리](2019) (촬영 : 김연제)
#3_ 큐레이팅-태도
큐레이팅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느낀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 간극을 어떻게 메우시는지 궁금합니다.
미술관이 티켓 수익만으로 운영될 수 있는 공간이 아니고, 그리하여 여러 지원과 협의로 일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항상 어려움과 한계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큐레이팅은 작업과 관객 사이의 매개인 동시에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 사이를 계속 매개하는 협상이고 이 또한 일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괴롭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돌파할 동료들이 있고요.
큐레이터를 꿈꾸는 이들은 대학 시절 어떤 공부를 하면 좋을까요?
큐레이터를 꿈꾸는 이들이 택하는 전공이 주로 예술사와 미학 등이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체계 안에 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방향으로 멋지게 일하고 있는 분들도 계십니다. 갤러리 팩토리를 운영하시는 홍보라 큐레이터와 네덜란드 유트레흐트에서 카스코 워킹 포 더 커먼스 라는 기관의 디렉터로 일하고 계신 최빛나 큐레이터도 서강대 동문이신데, 틀에 갇히지 않고 개성적이고 뚜렷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을 하고 계시는,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큐레이터이세요.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넓은 인문학적인 소양과 예술 전반에 관한 관심이 큰 도움이 됩니다. 자신만의 커리큘럼을 짜서 넓고 다양하게 경험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서강대학교는 그러기에 좋은 환경이니까요. 또한 글쓰기가 정말 중요합니다. 기본적으로 작가들에게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전시의 콘셉트에 대한 글을 써야 하며 도록이나 비평문 같이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입니다. 해외 작가 및 기관과 일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다면 좋고, 무엇보다 전시를 많이 보는 게 제일 좋아요.
이번에 2022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으로 선정되셨죠. 선정 과정과 앞으로 비엔날레의 방향성을 어떻게 이끌어가실지가 궁금합니다.
선정과정은 오픈콜이었고 기획서를 내고 심의 후 인터뷰를 통해 최종 선정이 되었습니다. 컬렉션을 가지고 미술사에 기입될 작품들을 보여주는 견고하고 장기적인 구조의 미술관과 다르게 비엔날레라는 것은 단기적으로 큰 이슈를 던지는 축제이기에 규모도 크고 내세우는 이슈도 시대상황에 필요한 것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프레임이 적용되어야 하죠. 부산비엔날레는 도시기반 미술행사이기 때문에 지역성을 고려하면서도, 국제적인 행사를 표방하는 비엔날레의 특성을 담아 의제를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이슈로도 연결하는 것이 기본적인 과제입니다. 그래서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부산의 이야기를 비슷한 발전과정을 겪은 여러 도시의 형성과정으로 확장하여, 보편적인 질문을 던질 예정입니다. 지금은 큰 방향을 정하고 리서치를 진행중입니다. 정확한 주제는 연말쯤 공개될 예정이에요.
서강에는 아직 닦여 있지 않은 자신의 길을 만들며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헤매면서도 빛이 난다.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단어 중에 눈이 가는 것들을 찾아 도서관을 뒤지고 더 이전에 공부한 이들을 찾아다니며, 자유로운 서강의 학풍 아래 여러 기회를 통해 꾸준히 자신의 커리큘럼을 짜 그렇게 배운 것들을 세상에 펼쳐놓고자 한다. 김해주 동문 역시 서강을 하나의 단단한 디딤돌로 삼아 학교 안팎을 누비며 공부와 실행을 거듭했고, 그 결과 꾸준히 자신의 로드맵을 그려내며 전문성을 닦아왔다. 묵묵한 그가 만들어낼 부산국제비엔날레와 앞으로 그가 전시를 통해 던질 질문이 기대되는 시간이었다.